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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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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가치를 높이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은 좀 더 널리 사용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소성은 어떠한 가치에 상응하는 퀄리티 이기도 하지만 이미 가진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 그 자체로도 이용된다.

예컨대 '성실'이라는 개념의 과대평가의 의미도 다음과 같이 해석 할 수가 있는데 ....

본래의 '성실'은 사실 좋은의미로서 어떠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동기부여와 에너지가 선순환 되는 부지런한 상태를 의미 하지만, 근래에는 어떠한 가치(혹은 성과를) 쉽게 획득하지 못하는 어떠한 것으로 만들어서 불필요하게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허례허식이 되어버렸다.

10일짜리 일을 어떠한 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2일만에 끝내버려도 나머지 8일을 띵가띵가 노는 모습을 보여 버리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그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았고 불성실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오너가 그사람의 능력을 알아보고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이 훨씬 영리한 행동 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 남는자는 10일짜리 일을 10일에 맞추어서 고생하는 티를 역력히 내어 다른사람의 시선을 고려하는 그 사람이 된다.

 이것을 관계지향적인 마인드로 보고 성공을 향한 지름길 처럼 말하는 것은 명백한 날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체계들은 사람들이 밑바닥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을 쉽게달성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피라미드적인 조직에서 곧 잘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비기득권자들이 기득권자들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어렵고 시간이 걸리게 만드는 방어적 장치일뿐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비능률적 이기만 한 것이다. 이른바 가치가 있어서
희소성을 띄는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희소성을 만들어 내어 많은 사람들이 가질수 없는 어떠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no pain no gain'
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목표를 위해 우리가 스스로 어떠한 고통을 받고
어떠한 댓가를 치르는지는 각자가 결정할 몫이다. 절대로 남이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핑크빛 '성실'에 목을 멘다. 성실 뿐만 아니라 많은 비효율적인 가치들이 그러한 폐쇄적 구조에 녹아들어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진정한 '노력'과 '성실'이란 누가 판단하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판단해서 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발 결과만 보고 판단해주길 바래야 하는 이런 현실이 우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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